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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울리히 벡, 그리고 슈바빙
전기철
몸에서 삐긋이, 문 여는 듯한, 어쩌면 철거덕, 쇠 채우는 것 같은, 까무룩히,
졸고 있다가 알지 못하는 길모금에서 노랗게 웃는 고양이가 양냥거리듯, 날
가지가 툭, 부러지듯이
전혜린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귀 울음 속 보들레르의 지팡이 내닫는 소리, 뒝벌 소리 같기도, 까마귀 소
리 같기도, 핼쑥하고 습한 그림자가 빛방울 사이에서 단춤을 추는 듯, 푸른
모자를 쓴 나무가 멀찌감치 걸어오는 듯
전혜린은 왜 일요일을, 뮌헨을, 맥주를 생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였을까요 .
- 전기철 시집 『박쥐』 (b판시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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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철 전남 장흥 출생. 1989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의 달팽이』, 『로카탱의 일기』, 『누이의 방』, 『풍경, 아카이브』, 산문집 『도시락』, 『거미의 집』 등이 있다. 현대불교문학상, 이상시문학상, 포이트리슬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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