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예술과의 만남을 위해 구축된 시각문화예술 공간: 홍콩 M+뮤지엄
[미술관 탐방] 예술과의 만남을 위해 구축된 시각문화예술 공간: 홍콩 M+뮤지엄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7.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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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서구룡West Kowloon 문화지구는 빅토리아 항구에 위치한 40헥타르의 매립지에 세운 새로운 문화구역이다. 이 지역은 홍콩 시민과 홍콩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문화구역에 대한 필요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구역이다. 극장,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 세계적 수준의 전시회, 공연, 문화 행사를 개최할 공간과 긴 해안 산책로 및 도시공원을 포함해 최근 홍콩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홍콩 미술관 두 번째 방문지는 이곳 서구룡에 위치한 ‘M+뮤지엄’이다. M+뮤지엄은 M+빌딩 내에 위치한 아시아 최초의 글로벌한 시각문화예술 공간으로 2021년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뮤지엄 건축은 패럴스TFP Farrells1 및 아루프Arup2와 협력하여 헤르조그&드 뫼롱Herzog&de Meuron3이 디자인하였다. 이 건물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거꾸로 된 ‘T’ 모양으로 융합되는 연단과 높고 가느다란 타워로 구성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연단 외벽은 세로무늬, 타워 외벽은 가로무늬의 촘촘한 커튼월curtain wall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둥근 대나무 모양의 진녹색 모듈식 패널로 연결되어 있다. 타워의 정면을 감싸고 있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4는 LED 조명이 삽입되어 있어 홍콩섬에서 바라보면 형형색색의 광고판으로 홍콩의 야경을 한껏 빛내준다.

홍콩M+뮤지엄 전경

건물 구조는 연단 아래 지하 1·2층에는 영화관, 매스미디어 자료관, 스튜디오, 파운드 스페이스, 레스토랑, 카페가 있고, 1층 그라운드 홀에는 본관 갤러리, 안내데스크, 워크숍&세미나실, 영상센터, 아트 숍 등이 있다. 주요 전시실이 몰려있는 곳은 2층, 타워를 중심으로 앞뒤 야외정원이 있는 곳은 3층이다. 타워는 지상 18층까지로 연구실, 사무실,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둘러볼 전시실이 있는 공간은 33개의 갤러리가 있는 2층과 3층 옥상정원 포함 17,000㎡규모의 전시 공간이 있어 어마어마한 전시규모를 자랑한다. 전시공간이 넓고 다양한 캡션으로 기획된 전시가 많아 사실 한꺼번에 다 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메인 전시 위주로 서술해 보려 한다.

우선, 사우스갤러리에 전시중인 《산수화: 메아리와 신호》전은 산수의 개념을 조각, 영상, 사운드, 디자인, 건축, 수묵화를 통해 산수를 재해석하거나 산업화 이후의 가상 세계에서 인류와 풍경 사이의 복잡한 연결을 탐구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다. 산수는 중국의 철학적 사고와 시적 상상력에 필수적인 문화적 유산이며 동아시아 전역에서 수천 년 된 수묵화 전통에 영감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풍경’으로 번역되지만 산수는 우리를 관찰 가능한 현실 너머로 데려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요함과 움직임, 비전과 상상, 경험의 순간, 역사와 기억의 지속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명을 나타낸다.

실크에 잉크와 물감으로 그린 양지창Yang Jiechang의 〈흑·백 겨자씨 정원〉(2009-2014) 산수는 자연 속 동물들의 유토피아를 변화하고 요동치는 선으로 묘사하였다. 중국계 프랑스 화가인 자오 우키Zao WouKid의 〈무제〉(1969)는 애쿼틴트aquatint와 에칭etching 같은 판화 기법으로 서정적인 산수를 표현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는 아연도금 강철을 연결한 입체조형물로 산수를 표현하였는데, 그의 작품 〈Cloud Mountain〉(1982-1983) 시리즈는 한 공간에서 조각 정원을 이루고 있다. 그 외 디지털 비디오 영상물도 많았는데 수쿤앙SooKoonAang의 〈예술가의 의례〉(2016),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의 〈공작의 묘지〉(2023), 통윈민Tong Wenmin의 〈바람을 타고〉(2016)는 현장 반응형 사운드 설치로 우리의 물리적 세계를 오버레이overlay하는 밀집된 통신 네트워크가 새로운 종류의 풍경으로 인식되어 보여준다.

양지창 작, Black & White Mustard Seed Garden, 2009-2014

또한 이 전시공간에서 가장 반가운 작품을 만날 줄이야! 바로 이우환의 〈관계항-거울의 길〉(2021-2024)이다. 이 작품은 바닥에 길게 설치된 유리거울과 자갈 사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스틸판 위를 거닐면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실루엣을 느낄 수 있고, 돌의 영원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신체에서 도시환경, 심지어 광활한 우주까지 모든 사물의 상호연결을 이해할 수 있다. ‘관계’라는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초점은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 주변 공간의 역동적인 관계에 맞춰져 있다.

이우환 작, 관계항-거울의 길, 2021-2024

이스트갤러리의 《사물, 공간, 상호작용-아시아와 그 너머의 디자인과 건축》전은 지난 70년 동안 아시아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가구, 건축, 그래픽 아트 및 기타 디자인 개체 등 500개 이상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즉 1948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 발행된 최초의 국가 정치 만화잡지부터 사회주의 홍보 포스터, 1970-90년대 포스트모던 생활 디자인 제품까지 국경을 넘어 초국적 교류를 통해 형성되어 있다. 이 전시는 국제적 맥락에서 사회·경제적 변화를 포함하여 이 지역에서 작용하는 힘을 보여주고,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을 만들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이와타 요시하루Iwata Yoshiharu의 〈도시바 자동밥솥-모델 RC-10K〉(1955), 리 나이한Li Naihan의 〈나는 기념물이다—CCTV 옷장〉(2012-2016), 쿠라마타 시로Kuramata Shiro의 〈Kiyotomo sushi bar〉(1988), 오하시 테루아키Ohashi Teruaki의 〈긴 한난의자〉(1984-1986) 등의 디자인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시그Sigg갤러리의 《또 다른 이야기》 전은 1990년대 중국의 빠른 현대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고하고 불확실한 존재 상태를 표현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정치적 해석 틀이나 연대기적 서술과는 달리 넘치는 영상미와 모호한 의미, 덧없음에 대한 집착, 전통적 해석이 돋보이는 다수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끝없는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 있다’는 도교 철학을 반영한 추시화Qui Shihua의 작품 〈무제 No.11〉(1992)은 거의 인지할 수 없는 획과 희석된 유성페인트를 사용하여 풍경의 모양, 대비 및 색상을 간단하게 묘사하여 풍경의 실루엣을 찾도록 관람객을 유도하고 있다.

시그갤러리 전경.

사중촌(중국 산시성 광링현 난촌진) 촌장 사무실을 찍은 컬러사진 작품 지옌Qu Yan의 〈권력공간시리즈〉(2007)와 썩어가는 살점을 닮은 부풀고 기괴한 네 인물이 어두운 배경을 배경으로 앉아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리우 웨이Liu Wei의 〈1989년 베이징 출생〉(1997)은 파괴에서 재건으로 전환하는 1989년 이후 중국의 부정부패와 젊은 세대의 심리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한 세대의 환멸을 포착하고 중국 사회의 무기력한 심리를 반영한 팡리쥔Fang Lijun의 작품 〈98.8.25〉(1998)은 광활한 물속에서 헤엄치는 대머리 인물의 모습을 통해 현실은 물처럼 양가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자신은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팡리쥔은 중국의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5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그림 속 인물들의 대머리 표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는 “모든 것은 상실했고, 허탈하고, 위기에 처했고, 건달 같고, 막막해 보이는, 이 개운치 않은 인물들이 마치 아무런 문제 없는 것처럼…”이라 말하며, 개인이 직면한 억압적인 중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탐구하여 작품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 다른 냉소적 사실주의 작가인 위에민준Yue minjun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1995)는 작가와 닮아있는 작품 속 무리들이 화약 연기 속에서 신나게 앞으로 걸어가거나 일부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히스테리하게 웃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90)을 차용한 작품으로 그는 프랑스 혁명의 용감한 시민들을 현대적인 도시 풍경과 터무니없이 웃는 남자들로 대체하여 이 프랑스 걸작에 대한 냉소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민준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 1995

그런가 하면, 가족사진을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장샤오강Zang Xiaogang의 작품 〈Bloodline-대가족 No.17〉(1998)은 순응을 상징하는 회색 의상을 입은 가족들이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연한 노란색과 붉은색이 겹쳐져 있다. 1980년대 중국의 경제개혁 이전에 찍은 가족사진과 닮은 이것은 가족 관계를 통해 사회 역사에 대한 성찰을 형성하고 있다.

장샤오강 작, Bloodline-대가족 No.17, 1998

또한, 중국과 서양 시각예술의 시각적 참조와 역사적 관행을 연결하는 회화 스타일을 개척하여 연극성을 끌어내는 작품을 제작한 왕싱웨이Wang Xingwei 작품 〈요약〉(2000)과 하이퍼리얼리즘 조각으로 움직임을 선보이는 손위안과 펑위Sun Yuan & Peng Yu의 키네틱아트 〈노인들의 집〉(2007)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포커스갤러리에는 읽은 책을 파쇄하여 종이실로 만든 다음 작품으로 엮은 첸리윤Chen Liyun 작품 〈뜨개질 대화〉(2013-2019)가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관객과의 대화를 작품으로 엮어 언어, 정치, 문화, 성별을 초월하는 새롭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감정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첸리윤 작, 뜨개질 대화, 2013-2019, 파쇄된 종이

 

M+빌딩 3층 옥상정원에는 32종의 식물과 놀이 구조물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넓은 연단 캔틸레버cantilever6로 인해 넉넉한 쉼터와 그늘을 제공받는 Grand Stair에 앉으면 빅토리아 항구와 공원 풍광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실내 전시 작품뿐만 아니라 이렇게 바깥의 멋진 풍광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여주는 공간은 드물다. 멀리 홍콩 고궁박물관, 시취센터Xiqu Center, 프리스페이스Freespace 건물들도 잘 보이고 날씨까지 협조해 주어 미적 감흥을 맘껏 즐길 수 있었던 홍콩 여행이다.


 

참고자료 홍콩 M+뮤지엄 www.mplus.org.hk

 


1 1965년 Terry Farrell가 설립하고 런던·홍콩·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건축 및 도시계획 회사.
2 1946년 Ove Arup에 의해 설립되어 디자이너·기획자·엔지니어·건축가·컨설턴트 등 기술전문가로 구성된 독립회사.
3 1978년 헤르조그 & 드 뫼롱 듀오가 스위스 바젤에 설립한 건축회사로 약 500명의 공동작업자로 구성된 국제회사.
4 건축 외벽의 가장 중심을 가리키는 ‘파사드(Facade)’와 ‘미디어(Media)’의 합성어로, 건물 외벽 등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말함.
5 중국사회주의 시기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마음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1990년대 초기에 유행함.
6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상태로 있는 보.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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