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연출가 겸 음악인 김민기] 사람농사 뒷것
[시로 만난 별 Ⅱ 연출가 겸 음악인 김민기] 사람농사 뒷것
  • 장재선(시인)
  • 승인 2024.07.02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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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농사 뒷것
- 연출가 겸 음악인 김민기

 

낮은 성조 탓에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며
뒷것을 자처한 채
배울학 밭전 연극학교를 열어
사람 농사 못자리를 오래 지켜왔다

잘 크면 되돌아보지 말고 나가라
뒷것의 당부는
앞것들이 무대에 쏟은 땀의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알곡으로 바꿔주겠다는
고독한 다짐이었을 것이다

학교에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아
뒤에서 귀를 열고 듣곤 했던 세월
이젠 병고와 함께 사는 늦가을이지만
청춘의 구호는 여전히 푸르다

꿈은 얻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시작노트

“모두 애썼어요. 그런데 캐스팅 오디션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실력을 보는 게 아니고 캐스팅 균형을 맞춰서 뽑는 거니까.”

김민기 학전 대표가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9년 7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디션이 끝날 때쯤이었다. 현장을 취재하고 있던 나는 그 순간 마음이 푸근해졌다. 김 대표의 말에서 오디션에 탈락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 방송국이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김 대표의 건강 악화, 경영난 등으로 인해 학전 소극장이 33년 만에 폐관하는 걸 계기로 만든 다큐이지만, 나는 그걸 보는 내내 슬프기보다 흐뭇했다. 이런 사람과 시대의 호흡을 함께 했다는 것이.

여기서 ‘이런’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 중 고갱이는 역시 휴머니즘이다. 그는 〈아침이슬〉 등의 노래로 폭압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지만, 그것은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낳은 결과일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젊은 시절 공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거나 빈민촌 야학을 할 때도, 그리고 학전을 설립해 30년 넘게 운영하면서도 그 애정을 오롯이 지켰다. 스스로 앞에 나서서 주인공 노릇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뒷받침하는 뒷것을 자처하며, 무대에 선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 대가를 정당하게 받기를 소망한 휴머니즘. 그 온기를 지켜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앞것, 뒷것 구분을 넘어서는 우리 시대의 귀인이다.

 

 


장재선 시인.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이 있음.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문화일보 대중문화팀장, 문화부장 등 거쳐 현재 전임기자(부국장).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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