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합주
[북리뷰]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합주
  • 유혜영 에디터
  • 승인 2024.07.02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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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태권도 명인으로 최고 급수인 9단에 이른 무도인武道人 이병석 시인이 첫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를 도서출판 모아드림 기획시선으로 출간하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살고 있는 이병석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국異國땅에 태권도의 지경地境을 확장하면서, 그동안 East Carolina University와 Chowan University, 그리고 Midwest University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태권도 9단의 경륜에 걸맞게 세계태권도연맹 기술위원, 국기원 명예 자문위원, 태권도 국제심판 등의 경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지방의 시 의회 인권위원장, 공화당 노스캐롤라이나주 상공회의 명예 의장 등의 전·현직을 감당하면서 여러 훈장·메달과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 평생공로상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기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고 온당한 평가를 받기는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은 그가 오랫동안 시를 써 왔고 더불어 그 시가 모국에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2023년 《경북일보》 주최 〈청송객주문학대전〉에서 시 부문 입상, 그리고 재외동포청 주최 〈재외동포문학상〉에서 시 부문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인천광역시 지하철 센트럴파크 역의 특별전시장에 1년간 전시되는 좋은 소식이 있기도 했다.

이병석 시인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

시를 지육智育과 덕육德育의 합일이라고 한다면, 태권도는 덕육과 체육體育의 합일이다. 머리를 써서 언어와 운율을 조합하는 일이나, 손발을 움직여 합당한 무력武力을 생성하는 일은, 모두 인간의 가치와 위의威儀를 높이는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태권도 지도자가 한 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하는 것이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에서 창안되고 발전된 무술로, 이른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다. 1950년대에 정립되어 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그 규정 및 경기 진행에 한국어를 사용한다. 이병석 명인은 바로 그 국제화의 현장에 있다.

이번에 펴낸 그의 첫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는 4부로 나누어져 총 71편의 가편을 수록했다. 시집을 펼치면 그의 세계관이나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사뭇 서정적이면서도 선량하다는 후감後感을 얻을 수 있다. 망설일 것 없이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나 『논어』에서 이른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을 떠올리게 된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고, 시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병석 시인은 그와 같이 순후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고, 그 가운데서 삶이 형성하는 경이로움 시로 포착했다. 이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의 인식은 그의 시 세계를 일관하는 정제된 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양자가 연합하여 결이 고운 합주合奏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시다.
 

바닷가 왕국
천사들마저도 질투하게 사랑한
포우와 버지니아는
바다 향이 올라오는
볼티모어의 한 언덕에 누워
한 줌으로 흙으로 함께 하며
가끔씩 기억되어
찾아와 불러주는 시인의 노래
애너벨 리에 잠을 자고 있다

시와 시인은 가고
그들의 사랑마저
떠나고 없어도
그들을 기억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 언덕에 올라
바다 바람을 노래 부르며
사라진 왕국의 이야기를 한다
애너벨 리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 「포우와 버지니아」 전문
 

이 시는 미국의 자연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와 그가 사별死別한 어린 아내 버지니아 글렘의 이야기를 담은 시 「애너벨 리」와 오버랩하여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 사별일까.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과 사랑에 감사하며, 그 감사가 극명克明한 까닭으로 이와 같이 애절한 시심詩心에까지 발걸음의 보폭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항차 시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마음의 쓰임새는 상찬賞讚할 만하다.

이병석 시인은 순후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가운데서 삶이 형성하는 경이로움을 시로 포착했다. 이 미려美麗에 대한 발견과 외경畏敬의 인식은 그의 시 세계를 일관하는 정제된 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양자가 연합하여 결이 고운 합주를 들려주는 것이 그의 시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지만, 시의 내면에 숨어 있는 함의含意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병석 출판기념회

시인의 정체성과 시에 거는 꿈

왜 이병석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시를 써 왔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인武人의 길과 다소 상거相距가 있어 보이는 이 길을 가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서는, 왜 시인이 시를 쓰는가에 대한 창작심리학적 논리를 환기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시인은 자기 내부에 있는 표현 욕구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시작詩作을 한다. 또는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심리적 책임감, 곧 기록 욕구를 감당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병석의 시 창작 또한 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유의할 것은, 그의 길이 시와는 좀 다른 모양이나 빛깔을 가졌더라도 그에게 시를 배태胚胎하는 예민한 감성과 이를 시가 되도록 표현하는 문장의 기량이 넉넉했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여행 중’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꿈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3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권도인으로 살아 그 명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바 되었으니, ‘행복했다’고 자평自評한다. 그런데 이 여행, 시를 쓰며 떠나는 이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 그의 토로다. 우리는 그의 여행이 더 행복하게, 더 성과있게 앞길을 열어가게 되리라 믿는다. 그의 품성을 믿는 만큼 그의 시도 믿는다.

이병석 시인은 지난 6월 13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로플라자(최영홀)에서 첫 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출간기념회도 가졌다. 그는 “37년 동안 태권도 사범으로 행복하게 살아온 나를 잊고 있었던 시가 다시 불러주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이동섭 국기원 원장, 이강재 서울대 교수, 조정환 숙명여대 교수를 비롯한 130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하여 앞으로 무도인 이병석 시인이 걸어갈 시의 길을 축하했다.

한 개인으로서는 성취하기 어려운 무력의 도정道程을 이룩한 이병석 시인이 첫시집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피고』 상재를 통해 국제무대에서도 빛나는 K-Poem의 꽃을 피우길 소망한다.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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