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무장애극에 이의를 제기하는 무장애극: 국립극장 〈맥베스〉
[연극 리뷰] 무장애극에 이의를 제기하는 무장애극: 국립극장 〈맥베스〉
  • 박진서(연극평론가)
  • 승인 2024.07.0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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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가장 ‘힙한’ 셰익스피어의 탄생이다. 국립극장의 〈맥베스〉1는 강렬한 미장센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막(맥베스)과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정육점이 잔혹한 살인의 현장으로 변해가는 이야기 안에서 농인 배우들은 수어를 사용하며 마치 스트릿댄서와 같은 몸짓으로 인물을 연기한다. 무당(마녀)은 사이키델릭한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소리꾼과 악사들이 록 사운드를 곁들인 국악으로 해설하는 이야기는 타이포그래피로 시각화되어 무대 뒤편의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다채로운 미장센만큼이나 ‘무장애극’이라는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립극장은 2021년부터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무장애극 연극리뷰시리즈를 선보여왔다. 기획 단계부터 장애 관객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제작함으로써, 배리어 프리가 보조적인 기능을 넘어 새로운 무대미학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인 〈맥베스〉의 미장센 또한 셰익스피어 희곡이 가진 시적 운율을 안무화된 수어를 통해 시각화하고, 여기에 다양한 무대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만들어진 결과다.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2022,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농인배우와 청인배우의 상호작용에 대해 탐구했던 김미란 연출은 〈맥베스〉에서 ‘무장애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이어간다.

무장애극이 ‘장애가 없는 공연’을 표방하고 있지만, 장애인 관객이 경험하는 장애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미란 연출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모두가 장애를 갖는 연극을 제안한다. 이것을 위해 한국어와 한국 수어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전복한다. 여타의 공연들이 청인 중심의 한국어로 제작된 공연을 한국 수어로 통역해왔다면, 농인 배우들의 한국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면서 한국어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 수어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내용 이해 과정에서 장애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은 각자 자신만의 장애를 안고 공연을 관람한다.

원작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16개의 삽화들을 통해 전개되는 방식은 이러한 관람의 효과를 확장시킨다. 장면들 속에서는 인물들이 저지르는 행동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제시될 뿐 그 안에 내재된 동기나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수어를 통해, 누군가는 자막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는 음성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르게 인물과 서사를 읽어낸다. 같은 공연을 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히 공연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맥베스〉는 모든 관객이 각자의 장애를 딛고 관객 수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간다.

‘장애가 없는’ 연극에 대한 시도는 내용적 측면과도 연결된다. 기존의 무장애극은 장애 담론 안에서 서사를 창작하거나 기존의 텍스트를 해석해왔다. 국립극장 무장애극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맥베스〉는 무장애극이라는 형식을 제외한다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장애의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형식적 차원의 ‘장애없음’을 넘어, 내용적 차원의 ‘장애없음’을 통해 무장애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농인배우 단체사진

물론, 연극에서의 장애서사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 관객을 위한 공연이 반드시 장애 서사만을 다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관객도 장애 서사 바깥에 있는 공연을 폭넓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맥베스〉는 ‘장애가 없는’ 연극을 통해 무장애극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시도한다. 실제로 지금껏 필자가 관람해왔던 무장애극과 비교했을 때, 객석에서 적지 않은 수의 수어 사용자를 만날 수 있었다. 선택과 결정에서의 장애가 조금은 희미해진 듯 보인다.

소리꾼 단체사진

일각에서는 장애가 없다는 뜻의 배리어 프리 대신 기존에 놓치고 있었던 장애를 인식한다는 뜻의 배리어 컨셔스barrier-conscious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모두에게 불편한 연극이라는 〈맥베스〉의 시도 또한 배리어 프리를 넘어 장애를 발견하는 배리어 컨셔스로의 전환과 맞닿아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조차도 예술은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나아간다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이의제기는 예술의 숙명과 같다. 기존의 연극에 이의를 제기하며 무장애극이 등장했다면, 〈맥베스〉는 거기에 한 번 더 이의를 제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누군가는 다시 이의를 제기하며 새로운 전진을 만들어 낼 것이다. 더 첨예하고 불편하게, 그래서 더 무궁무진하게 이어질 무장애극의 여정을 기대해본다.

 

 


 국립극장 기획공연 〈맥베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을 김미란이 각색하고 연출한 작품으로, 2024년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초연했다.

 


박진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예술경영을 공부하며, 공간의 프레임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노동과 다양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음. 저서로 『구로동 헤리티지』가 있음.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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